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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권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권 길은 망하리로다
[ 묵상도움글 ]
복이 무엇인지 모르면 자신은 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 적으로 잘될 때 복 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해지는 복, 은혜와 평강의 복입니다. 예배드리는 순간 우리가 누리는 복입니다. 이런 커다란 복을 받고도 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정말 그런가? 예수 믿고도 되는 일이 없는데? 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기에 자신이 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복이 복인 줄 모르면 복을 받고도 누리지 못합니다.
지금 나의 형편이 어떨지라도 복 있는 사람은 사는 것이 다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시냇가에 심기 운 나무는 저절로 과실을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이런 삶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들이 다 복된 사람들이지만 당시 그들의 형편은 말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세상 형편을 보고 복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님니다.
롯과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잘 된 것입니까? 우리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 같은 복을 이해하려면 1-2절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복은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며 늘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말씀데로 살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복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를 좇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결심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죄의 자리에 가 있고, 또 그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죄짓는 일이 싫어지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 이야기나 나누는 일이 부담스러워지고, 성경을 더 읽고 싶고 주의 일에 더 힘쓰고 싶고, 가정에 더 충실하고 싶고, 가까운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복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해지는 복, 은혜와 평강의 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복을 받고도 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잘못 보면 안 됩니다.
거짓말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가 그 재산이 자녀들의 손에서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게 집안을 많이 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거짓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을 더 알고 싶고 세상과는 구별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복 있는 사람의 증거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 증거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이미 복을 받았구나!”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계속하여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너무 소중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복있는 자인 증거입니다.
[ 복음 메세지 ]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골프를 치러 갔는데, 드라이브를 엉망으로 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수리가 나타나 골프공을 물어서 그린에 떨어뜨렸습니다. 그 다음에 토끼가 나타나 그린 위의 공을 밀었고 마침내 비버 한 마리가 공을 차서 홀에 넣었습니다. 홀인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소리쳤습니다. “제발, 주님! 저 혼자할께요”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하는 우리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조크입니다.
누구나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귀하고 복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늦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입니다.
창 13장에 보면 아브람, 롯 둘 다 장막을 옮겨 헤어졌는데,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면 아브람 보다는 롯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롯은 자기가 가고 싶은 요단들로 갔기 때문입니다.
아브람도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면 요단들로 갔지, 결코 헤브론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카와 싸우지 말자, 땅 욕심 내지 말자,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자’ 이런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했더니, 갈 곳은 산악지대 헤브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아브람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아니면 나는 죽는다' '이번 기회 놓치면 내 인생은 끝장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대학에 가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롯을 요단들로 떠나보낸 후, 바로 헤브론으로 가지 않고, 한참을 롯이 내려간 평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지로 내려간 롯이 부러웠는지, 헤브론 산지로 가서 살 생각을 하니 막막했는지 모르지만 아브람도 마음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넋을 놓고 롯이 간 요단 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 13:14)
“너 있는 곳”이란 롯이 차지한 비옥한 요단 들판의 반대편에 있는 비탈진 서쪽 언덕, 부드러운 풀도 없고 물도 없는 메마른 곳이었습니다. 아브람의 마음이 왠지 서글프고 허전해서 헤브론으로 옮겨 갈 힘도 없어 우두커니 롯이 갔던 요단들을 내려다보던 그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하나 좋은 것이 있었는데, 높은 산악지역이라 눈을 들어 보면 가나안이 다 내려다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라” “네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해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왜 좋은 목초지를 주지 않으시고 거친 산악지역으로 인도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정말 주시려는 현재가 아니고 미래의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브람이 선 곳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었습니다. 풍성한 초지는 없었지만 영감이 있는 곳입니다. 복된 미래가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형편이 어려워도 영적으로 높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 때는 오히려 눈앞의 세상과 풍요 밖에 보지 못하지만,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 바라보게 되고 축복의 약속 바라보게 되고 천국 바라보게 되고 후손들의 축복 바라보게 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영감이 넘치는 사람, 아브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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