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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기독교 성경적 사전적 의미로 [갈라디아, 갈라디아서, 갈래, 갈레, 갈렙]라는 단어를 풀이합니다.

    성경 사전

    갈라디아

    [ Galatia ] ‘젖처럼 희다’는 뜻. 본래는 유럽 민족인 골(Gaul) 족속이 거주했던 소아시아 중앙의 해발 700-1000m 고원 지역. 북쪽으로 비두니아, 남쪽으로 브루기아, 서쪽으로 아시아, 동쪽으로는 본도와 갑바도기아 주(州)에 둘러싸여 있다. 헬라인들은 이곳을 ‘골 사람의 마을’이란 뜻으로 ‘갈라타이’라 불렀는데, 지명 ‘갈라디아’는 이 말에서 유래되었다. B.C. 25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로마의 행정 개편에 따라 갈라디아 주(州)가 되었다. 이 지방에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와 같은 성읍들이 있었다. 사도 바울은 세 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고전 16:1; 갈 1:2; 딤후 4:10) 사도 베드로 역시 로마에서 순교하기 전 이곳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보인다(벧전 1:1). →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보라.

     

    갈라디아서

    본서신은 구원이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사상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교리 서신이다. 하지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곧 율법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본서신은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 실천적 측면을 아주 소상하게 가르친다. 이런 측면에서 학자들은 본서신을 일컬어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으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제목

    헬라어 성경에서 본서는 ‘프로스 갈라타스’로 불린다. 이는 ‘갈라디아인들에게’(to Galatians)란 뜻인데, 갈리디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회람 서신이다. ‘갈라디아서’는 이 제목에서 유래되었다.

    저자

    본서신은 바울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본서신이 직접 증언하고 있으며(1:1; 5:2), 본서신의 문체나 중심 사상, 언어 등 이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초대 교부들 역시도 전통적으로 본서신을 바울 저작으로 본다(Eusebius). 한편, 2세기경 갈라디아 지역에서 유대인 중심의 율법주의 자들과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 사이에 복음에 대한 논쟁이 심각할 때 바울주의자들이 복음을 변론하기 위해 바울의 이름으로 본서신을 기록했다는 소수 견해(Pierson, Bruno Bauer)가 있기는 하나 거의 무시된다.

    기록 장소와 시기

    본서신의 기록 시기나 장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1차 선교 여행 직후(A.D. 49년경) 수리아의 안디옥에서(M.C. Tenney), 혹자는 2차 선교여행 도중(A.D. 50-52년경) 고린도에서(Zahn, Clarke) 본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서신은 3차 선교여행 도중 에베소 혹은 마게도냐 지방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이유로 ①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교회들을 설립하였기 때문에(행 13:14-14:23; 갈 4:13) 이 시기에는 아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②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서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준동이 있었다는 것은 이들의 활동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본다면 본서신은 아무래도 바울의 3차 선교여행 기간 중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바울이 에베소 또는 마게도냐에서 본서신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A.D. 53-56년경).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갈라디아 지방은 사도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복음을 전한 지역이다. 이때 바울은 이 지역에 있던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고초를 겪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쫓겨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이고니온으로 사역지를 옮겨야 했으며(행 13:45, 50),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급히 루스드라로 도망쳐야 했다(행 14:5-6). 급기야 루스드라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성밖에 버려지기까지 하였다(행 14:19). 이만큼 갈라디아 지방은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강했고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 역시 개종한 유대인들의 입김이 강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어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율법이란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주님의 은총이 아니면 결코 구원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바울은 율법의 이런 기능을 일컬어 ‘초등교사’(몽학선생)라 하였다(3:23). 따라서 모든 사람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이신칭의). 그러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곧 신앙의 방종과 도덕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고 가르친다(5:13). 구원받은 성도의 진정한 자유는 형제를 섬기고 사랑의 종이 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배경과 무대

    갈라디아 지방은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복음을 전파한 곳이다. 주요 도시들로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이 있다. 이 갈라디아는 유럽에서 이주한 갈리아 족(Gaul)의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후에 로마 제국이 이 땅을 정복하고 로마의 한 주(州)에 편입시켰으며(A.D. 25년경), 일찍부터 유대인들이 이주하여 자리를 잡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갈래

    [ Kallai ] ‘빠르다’는 뜻.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 가운데 하나로, 제사장 가문인 살래 족속의 족장이며, 대제사장 요야김과 동시대의 사람이다(느 12:20).

     

    갈레

    [ Calneh ] ‘그들의 전부’란 뜻. 노아 대홍수 후에 함의 자손인 니므롯이 시날 땅에 건설한 성읍(창 10:10). 수리아 북방 ‘갈로’(Calno)와 동일 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사 10:9; 암 6:2). 혹자는 히브리 성경 창 10:10에 언급된 ‘갈레’를 ‘그들 모두’(all of them)라는 보통명사로 해석하여 특정 지명보다는 앞에 열거된 세 도시 곧, 바벨, 에렉, 악갓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갈렙

    [ Caleb ] ‘개’란 뜻.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딸은 악사. 사위는 사사 옷니엘이다(삿 1:12-15, 20; 3:9). 갈렙은 유다 지파의 족장이요 열두 정탐꾼 중 한 사람으로 가나안을 정탐한 뒤 10명 정탐꾼과 이에 동조하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가나안 땅을 공격하여 정복할 것을 주장했다(민 13:30; 14:6-9). 갈렙은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으로 파견되어 충성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수 14:7),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헤브론 땅의 장대한 자들, 곧 아낙 자손의 산지를 솔선하여 정복하고 분깃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앞장선 신실한 믿음의 용사였다(수 14: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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