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저자  사도 바울 저작 연대  A.D. 51 - 53년경
기록 장소  고린도 기록 대상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들

핵심어
및 내용

 핵심어는 '견고함'과 '재림'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신앙 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견고히 서라고 명령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교인들에게 재림에 대한 올바른 견해들을 거르치고, 그 시기가 언제이든 항상 깨어서 근신하며 준비할 것을 권면한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니아 지역의 수도로, 로마와 현대의 이스탄불인 도시를 거쳐 유럽의 동쪽을 연결하는 당시 군사용 상업용 도로망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에 위치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약 20만 명이 살고 있었으며 헬라인들이 많았으나, 발단된 도시에는 늘 유대인 사업가들이 있었으며 특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 회당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의 이름은 카산더 장군의 부인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누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찌가 그곳에 살고 있던 약 6만명의 유대인을 죽인 곳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이곳에 어떻게 사도바울이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사도바울은 최소한 3번의 안식일 동안 유대인 회당에서 강론하며 사역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행 17:2-4). 그러나 그의 성공을 시기하는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인해 디모데만 그곳에 남겨 놓고 혼자 베뢰아로 급히 도피하게 됩니다(행 17:10). 데살로니가 2장을 보면 사도바울은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손수 일을 하며 그들을 위해 사역을 했으며(2:7-11), 사역기간 중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준 빌립보 교회로부터 두 번 재정적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빌 4:16). 사도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유사한 저항에 부딪혀 아덴으로 이동했을 때 거기서 디모데를 만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냈다가(살전 3:1), 나중에 고린도에서 합류하게 됩니다(행 18:5). 이러한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다녀온 디모데의 보고에 근거하여(살전 3:6-7)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전서를 썼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문제의 근원은 사도바울이 그곳에 머문 기간이 매우 짧았으며, 그런 것 치고는 양질의 교리적 가르침을 주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 간에 생긴 오해와 함께 발생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 입니다. 간단히 말해 데살로니가전서는 갑작스레 두고 떠나온, 어린 교회를 돕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서신을 보면 그의 짧았던 방문에 대한 안타까움이 베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들을 간절히 보기 원한다는 말이 수 차례 나옵니다(2:8, 17-28; 3:10-11). 그들을 두고 갑자기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며, 다시 돌아가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2:17-18). 또한 그들에 대한 궁금함이 디모데를 그곳으로 보낸 이유라는 것도 분명히 말합니다(3:1-5). 특별히 3장 10절의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표현을 통해 양육에 대한 사도바울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심한 핍박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디모데의 보고에 따라 그들을 칭찬하며 “더욱 많이 힘쓰라”며 진보하기를 도전합니다(4:1).

서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그들의 이해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곳에 짧게 무르면서 행한 가르침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것이 오해를 낳았고, 그것이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기에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은 그들의 죄에 대한 처벌을 받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은 재림 때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으며(4:13이후), 사도바울은 우리가 ‘휴거’라고 해석하고 있는 부분을 통해 재림하시는 주님과 그들이 하나가 될 것을 분명히 합니다(4:16-17).

또한 재림을 염두에 둔 ‘주의 날’을 논하며 깨어서 살 것을 도전합니다(5:6). 깨어 산다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 영역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적 삶의 영역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4:1-12; 5:12-22). 이방인들의 무분별한 성적 기준을 따르려는 그리스도인들과(4:4이후) 교회 지도층과 평신도 간의 계층적 긴장(5:12이후)등의 영역에 있어서의 개선까지도 포함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삶의 지침 구절로 그토록 유명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가 나옵니다. 재림이 궁금한가요? 말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궁금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는 거기에 대한 답과 도전을 줍니다.

[출처] - 드라마바이블

 

반응형